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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국립해양박물관 온라인 미디어 기획전

2022 국립해양박물관 온라인 미디어 기획전 전쟁과 평화 : 임진왜란에서 조선통신사의 길로

  • 전시기간 2022 - 10 - 05 ~ 2022 - 12 - 31
  • 전시장소 온라인 / [부산역]부산유라시아플랫폼
  • 관람료 무료
  • 주관/주최 국립해양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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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 : 임진왜란에서 조선통신사의 길로

전시기획과 연출담당 이정은 학예연구사 : 2022년 국립해양박물관 미디어 기획전시 주제는 "바다를 건너간 조선통신사" 입니다.
조선통신사는 임진왜란 이후 1607년에 시작하여 1811년까지 총 12회 파견 된 평화의 외교사절단입니다. 이번 미디어 전시는 조선통신사의 문화교류를 담아낸 영상입니다. 2022년은 공존·평화·우호·협력의 결과물인 조선통신사 기록물이 세계 기록유산에 등재된 지 5주년을 맞이하는 해입니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는 한·일 양국이 해양을 건너서 이루어 낸 조선통신사의 문화교류역사를 인식하며 조선통신사의 정신처럼 교류하고 소통하길 바랍니다.

전쟁과 평화
임진왜란에서 조선 통신사의 길로
부산 유라시아 플랫폼의 영상

한·일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은 '임진왜란과 조선통신사'입니다.
'임진왜란'으로 생긴 침략의 상처는 400년이나 지난 지금도 기억되고 있습니다.
'조선통신사'는 일반적으로 조선 국왕 명의로 일본의 최고 통치자에게 보낸 공식적인 외교사절단이자 문화사절단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는 바다를 건너온 '임진왜란'과 바다를 건너간 '조선통신사'를 주제로 한 온라인 미디어 기획전입니다.



프롤로그


한일 관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사건은 전쟁과 평화의 외교 ‘임진왜란과 통신사’이다.
임진왜란의 경우는 침략의 상처가 400년이나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고 ‘역사적 사실’로 남아있다.
조선통신사는 일반적으로 조선 국왕 명의로 일본의 최고 통치자에게 보낸 공식적인 외교사절이자 문화사절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번 전시는 바다를 건너온 임진왜란과 바다를 건너간 통신사를 주제로 한다.
첫 임란 전투부터 통신사의 출발지까지 그 역할을 수행한 해양수도 부산과 조엄을 중심에 둔 온라인 미디어 기획전시이다.




1부. 임하다


바다를 건너온 亂, 임진왜란
16세기가 끝나갈 무렵, 일본군이 바다를 건너 대규모 선단을 이끌고 부산 앞바다에 도착했다. 동아시아를 뒤흔든 임진왜란의 시작이다.
임진왜란은 1592년부터 1598년까지 한반도를 무대로 한 동아시아 국제 전쟁이었다.
임진왜란으로 인해 조선의 정치 경제 사회 질서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고 일본의 정권은 바뀌었으며 중국은 왕조가 교체됐다.
7년간의 전쟁으로 조선은 전화(戰禍)에 따른 인명의 손상은 말할 것도 없고 조선 국토 유린, 조선인 납치, 문화재 약탈 등의 피해가 극심했다.

1-1. 부산포해전과 3대 해전
1592년 9월 1일 전개되었던 부산포해전은 경상도와 전라도의 두 수군들이 연합하여 대승을 거둔 전투로서 임진왜란 시기의 전세를 바뀌게 할 만큼 획기적인 승리였다.
부산포해전에서 패전한 일본수군은 서해 진출이 불가능해졌으며 동시에 육군의 진출도 어렵게 됐다. 이후 일본군은 한반도 남단에 고립되면서 강화회담에 나서게 됐다.

1-2. 임진왜란과 동래부
임진왜란은 조선왕조의 최대 국난으로 일본과 지리적으로 인접했던 동래부로서는 가장 치명적인 전쟁기억이었다.
1592년 음력 4월 14일 부산진 공격을 시작으로 4월 15일까지 단 이틀 만에 함락된 동래부 전투는 비록 패배의 역사이지만 동래부사를 비롯하여 최후까지 항전한 순절의 역사로 기록됐다.
임진왜란 이후 국가차원에서나 동래지역 내에서 전쟁 당시의 항전을 기록하여 충절을 드높이고자 노력했다.




2부. 지키다


불법佛法으로 수호한 승군僧軍
조선시대 승군은 동아시아에서도 보기 드문 독자적 양상을 남겼다. 호국을 우선시하여 ‘불상생계’나 ‘무기소지금지’의 계율을 어기고,
국왕을 위한 살생을 인정하고 전쟁에서 싸우는 일도 마다하지 않은 것이다.
7년간의 전쟁이 끝난 뒤 조선왕조는 일본과의 화평을 강구할 때, 1604년 사명대사를 일본에 탐적사로 파견한다.
사명대사가 수행한 대일 강화외교는 우리백성 3천여 명 송환과 함께 3년 뒤 본격적으로 시작된 조선통신사의 기틀을 마련했다.
승군의 충의의 공적은 유교사회에서 평가 받았고 불교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가져왔다.

2-1. 사명대사와 승군
당시 조선이나 일본 양국은 모두 외교재개를 간절히 바라면서도 공식적인 조처는 하지 않았다.
이는 양국의 국내외적인 사정과 7년 전쟁이 가져온 상호간의 불신으로 인한 것이었다. 조선은 양국의 이중적인 의도를 중재할 수 있는 인물로 사명대사를 발탁했다.
조선정부의 의도는 비공식적인 사명대사의 파견으로 공식적인 수행성과를 원하였고 사명대사의 활약을 통해 양국의 현안을 타결하기에 이르렀다.

2-2. 조엄의 승려구제
임진왜란 시기 승군의 활약을 통해 국가는 새로운 역 부과의 대상으로서 승려를 주목하게 됐다.
임진왜란 직후부터 시작된 승군의 조발은 승병 집단을 기초로 하고 있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로는 승려를 동원하고 통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되어 그 성격이 완전히 변하였고 국가는 승려를 부역이 가능한 군사력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승려에 대한 막중한 부역과 군사력 차출은 또 다른 폐단을 낳았고 범어사 또한 다르지 않았다.
1808년 범어사는 조엄이 범어사에 부과된 세금과 승려들의 부역을 면제 시켜준 것을 감사하는 뜻에서 영사단지를 기록하고 같은 해에 제단을 설치하여 그를 기리는 불망비를 세웠다.




3부. 통하다


바다를 건너간 조선통신사
조선통신사는 1607년부터 1811년까지 모두 열 두 차례 파견되었다.
조선 전기에도 통신사를 포함해 여러 이름으로 사절단을 파견했지만 임진왜란 이후 국교가 단절되면서 통신사 역시 중단되었다.
탐적사 이후 재개된 조선통신사는 12차례로 파견되었다.
임진왜란 이후 1607년 일본에 있던 피로인을 송환한 제1차 회답 겸 쇄환사를 시작으로 마지막으로 파견된 1811년의 통신사까지

조선통신사는 문화교류도 활발히 이어나간 평화의 외교사절단이었다.
3-1. 선린우호의 길, 조선통신사
임진왜란 이후 조선은 전쟁이 종결된 지 10년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일본과 국교재개를 했다.
일본의 거듭되는 강화요청으로 1604년 6월 강화사절 탐적사 사명대사, 그리고 1607년 제1차 회답겸쇄환사 파견이 진행되었다.
이후 조일 양국 간의 외교 및 교역 관계는 모두 재개 되었고, 명실공히 교린 체제가 회복되었다. 바로 조선통신사의 시작이었다.

3-2. 바다를 건넌 조엄
1763년의 계미통신사는 임진왜란 이후 파견된 11번째의 통신사로 정사 조엄을 필두로 부사 이인배, 종사관 김상익, 제술관 남옥,
서기 성대중 원중거 김인겸, 역관 최학령 이명윤 현태익, 사자관 홍성원 이언우, 화원 김유성, 비공식화원 변박 등을 파견했다.
1763년 통신사는 앞선 통신사들의 문화교류가 응집된 결정체로서 조일 문화교류 본 모습인 ‘문화외교’가 자장 잘 나타난 시기였다.
조엄은 조선통신사 사행 당시 조선으로 고구마를 전한 일 외에도 일본의 상업과 기술이 배울만하다는 점을 알고 일본의 실용기술인
수차, 물레방아, 배다리, 제언, 농경지 정리 기술 등에 긍적적 관심을 갖고 이를 수용 도입한 인물이었다.




4부. 남기다


200년간의 조선통신사, 200년 후 세계인의 유산으로
조선통신사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한일 공동 등재로는 역사상 최초이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은 한국측자료와 일본측자료로 나눠지고 다시 ‘외교의 기록(5건 51점)’, ‘여정의 기록(65건 136점)’, ‘문화교류의 기록(41건 146점)’으로 분류했다.
조선통신사 기록물은 전쟁을 겪은 조일 양국이 ‘通信’으로 대표되는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진솔한 정감을 나누고 관심사를 주고받은 믿음의 결과물이었다.
공존과 평화, 우호와 협력의 결과물인 통신사 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 등재 5주년을 맞아 그 가치를 확산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이를 공유하길 바란다.

4-1. 한국 측 기록물
UNESCO 세계기록유산 등재 조선통신사 기록물은 총 111건 333점으로 한국에 소재한 것이 63건 124점이다.
기록물은 외교기록 5건 51점(한국 2건 32점), 여정기록 65건 136점(한국 38건 67점), 문화교류기록 41건 146점(한국 23건 25점)으로 구성되었다.

4-2. 일본 측 기록물
UNESCO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조선통신사 기록물 111건 333점 중 일본에 소재한 기록물은 48건 209점이다.
기록물은 외교기록 5건 51점(일본 3건 19점), 여정기록 65건 136점(일본 27건 69점), 문화교류기록 41건 146점(일본 18건 121점)이다.




에필로그


잊지 않되, 통하다
임진·정유재란을 일으킨 일본에 전쟁의 책임을 묻고, 200여 년 간의 선린우호의 길을 열다.
조선통신사는 전쟁으로 단절되었던 한일 양국의 관계를 회복하고, 대등한 관계에서 서로 왕래하면서 선린의 역사를 남겼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는 한일 양국이 조선통신사라는 ‘긍정의 기억’을 상호 인식하며 조선통신사의 정신처럼 진실로 교류하고 소통하길 바란다.
조선통신사는 해양문화교류의 시초이자 지금의 세계박람회, 2030 엑스포의 연장선상에 있다.
‘세계의 대전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항해’는 세계 엑스포의 주제이자 해양교류의 새로운 역사가 될 것이다.


2022 국립해양박물관 온라인 미디어 기획전시 Online Media Special Exhibition of the Maritime Museum of Korea 2022 전쟁과 평화 : 임진왜란에서 조선통신사의 길로 The Path from the Imjin War to the Joseon Tongsinsa 왼쪽 QR코드 이미지와 오른쪽 행사 일정을 안내하고 있다. 2022년 10월 5일 수요일부터 2022년 12월 20일 토요일까지 진행됩니다. QR 코드를 통해 온라인 전시관으로 입장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