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칼럼 MARINE COLUMN 격렬비, 열도. 영해를 지키는 장수처럼
격렬비열도. 과문한 탓에 들어본 적 없는 섬이다. 이름 또한 독특하다. 어지간하면 '-도'를 붙여도 두 글자, 세 글자가 대다수인데 다섯 자로 보인다. 알고 보니 격렬비와 열도가 합쳐진 말이다. ‘격렬비’는 새들이 무리지어 나는 모양을 뜻하는 한자어라고 한다. 조금 아쉬워졌다. '격렬과 / 비열 사이 / 그 / 어딘가에 / 사랑은 있다'라며 낭만을 부여하던 시인도 있었으므로. 원뜻이야 어찌됐든 이 섬의 독특한 이름은 듣는 이에게 저마다 어떤 상상 또는 흥미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선실 알림판
격비도 전경
손재학 관장님 외 6명으로 구성된 우리 국립해양박물관 일행은 북격렬비도 등대 및 주변 생태조사를 위해서 5월 30일에 부산을 출발, 31일 군산에서 바다의 날 행사를 마친 뒤 태안군 모항항에 도착했다. 낮에 비가 왔던 터라 날은 끄느름했다. 바다에는 해무도 부옇게 껴있었다. 우리의 목적지에는 정기적인 선편이 없어 9.77톤급 갈매기호 를 빌렸다. 배에 타자 모두에게 구명조끼가 배분되었다. 해상에서는 선실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구명조끼를 반드시 입어야 한다. 해경 두 사람이 탑승자와 신분증을 확인하고 무사항해를 기원해주었다. 선착장에 매어있던 배가 마침내 신나게 바다 위로 줄달음쳤다. 어느 순간 문자와 전화가 제대로 터지지 않게 되자 튜브를 끼고 동동 떠다니는 바다가 아닌 진짜 넓은 바다로 향한다는 느낌과 함께 고립감과 설렘이 동시에 일었다.
2시간 반만에 드디어 마주한 북격렬비도는 방문객이 품은 상상이 어떠한 것이든 거기에 어울릴 법한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고치자면, 섬의 정확한 형상을 보았다고 하기는 어렵겠다. 북격렬비도는 시야가 최악인 바다위에 갑작스레 장벽처럼, 허락받지 못한 자들의 여로를 가로막는 장수처럼 나타났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해무를 갑주 처럼 두텁게 둘러 그 속을 능히 짐작하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섬은 물 입자의 장막 뒤에서 객의 상상에 따라 얼마든지 은밀하고 무쌍하게 변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1909년 6월부터 등대를 설치해 바다를 밝혀온 이 섬은 1994년에 무인화된 채 21년을 괭이갈매기 떼에 의지해 지냈다. 2015년 다시 유인화된 것은 중국 어선들의 불법 조업 때문이라고 한다. 서격렬비도에서 서쪽으로 22km를 가면 공해상이고 260km를 가면 산둥반도라고 하니 중국과 얼마나 가까운지 알 수 있다. 서격렬비도는 우리나라의 영해와 해양 관할권을 확정할 수 있게 해주는 23개의 영해기점 섬들 중 하나이므로 그 중요성 또한 능히 짐작할 수 있다. 형제섬이자 국가 소유인 북격렬비도에 항로표지관리원이 상주하게 된 것은, 유사시에 사람의 거주와 지속적인 관리 여부 등이 영유권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근거가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최장연속체류자 격렬이
해무가 방울방울
대산지방해양수산청 소속의 항로표지관리원이 내려와 우리를 맞았다. 중국과 가까운 서단의 섬이라 산둥반도에서
개 짖는 소리까지 들린다더니 과연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섬에서 키우는 개 ‘격렬’이의 고함질이다. 생긴 것은
백구인데 습기 먹은 털을 흙바닥에 비벼대 몰골은 똥개가 따로 없다. 낯선 이들이 대거 내리자 목청이 한껏 커진다.
네 명이서 둘 씩 조를 이룬 항로표지관리원들은 각자 보름에 한 번씩 교대하기 때문에, 입도 이후 같은 사람과 쭉
함께해보지 못한 백구 녀석의 낯가림이 심하다 해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모노레일에 짐이 하나둘 실려 가는 모습을 보다 홀로 관리소로 출발했다. 길은 지그재그로 나있어 올라가자니
10분을 훌쩍 넘긴다. 불현듯 바라보니, 선착장이 보이지 않는다. 불과 조금 전 지나친 아래쪽 길도 희미하게
번져있다. 이름 모를 새소리가 나무 수풀 사이에서 날갯짓 한 번 없이 포르르 울어 앞을 보라 한다. 안개 속을
걷는다는 게 이런 것인가 실감이 난다. 비현실적인 공간에 들어왔다는 실감. 걸어 나갈 때마다 자욱한 해무가
걷히고 길이 끝없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조차 몽환적이었다.
등대와 격렬이

이른 아침, 악패듯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잠을 깨웠다. 세상모르고 자던 사람들 대부분이 놀라 일어나 앉았다.
다름 아닌 전기혼(electric horn) 소리다. 등대라고 하면 사람들은 대개 ‘어두운 바다 위를 비추는 외로운 빛
한 줄기와 묵묵히 바닷길을 밝히는 등대지기의 고독’을 떠올리며 낭만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해무의 장막을
찢어버리기라도 할 듯한 이 날카로운 소리는 등대, 나아가 항로표지라는 것이 사람과 선박을 보호하기 위한
치열한 생존현장에 존재하는 것임을 상기시켜 주었다. 등대는 항로표지 중 하나로 불빛을 통해 항해중인 선박들에
바다와 육지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광파표지다. 불빛뿐만 아니라 전파나 음파, 형상으로 정보를 전달할 수도
있다. 전기혼은 그 중 음파표지이다. 귓속이 뜨거울 정도로 혼이 울리는 걸 보니 어젯밤의 걱정이 무색치 않게,
오늘 아침에도 시야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결국 그날 아침에 예정되어 있던 손관장님의 수중촬영은 취소되었다. 해양에서는 안전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안타깝지만 당연한 조치였다. 대신 일행은 만들어간 현수막을 들고 관리소 옥상에 올랐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나서 먼 곳으로 시선을 던졌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동서격렬비열도가 모두 보인다 하니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칠흙속의 등대

뭍으로 나가기 위해 우리는 어제저녁 했던 일을 정확히 반대로 되풀이했다. 짐이 정리되고 모노레일이 부지런히
왕복했다. 선착장에 내려가고 나서야 비로소 주변에 듬성듬성 자란 풀들과 주상절리며 괭이갈매기 떼를 볼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괭이갈매기의 수는 굉장했다. 독도를 근거지로 삼은 동족에 못지않은 수의 괭이갈매기 떼가 우리
주변을 선회하며 섬 근방의 황금어장에서 농어며 광어를 잔뜩 낚아올릴 꿈을 꾸고 있었다.
교감
안녕하기를
우리를 다시 뭍으로 데려갈 또 다른 갈매기, 갈매기호가 다가왔다. 함께 뭍으로 나가는 항로표지관리원 한 사람이
반갑게 웃으며 배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새로 이곳에서 보름간 근무할 관리원이 그의 손을 잡고 건너왔다.
그새 정이 든 격렬이를 한참 쓰다듬고 배에 올랐다.
항로표지관리원 외에 상주하는 이가 없는 섬이니만큼 정기적인 여객선도 없는 섬. 편대비행을 하듯 서해 끝자락에
버티고 서서 파수꾼 노릇을 하는 격렬비열도를 보다 더 잘 지키기 위해서는 동쪽 끝 독도처럼 관광객들이나마 많이
오가야 하지 않을까. 충청남도와 태안군에서 관광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하니, 언젠가는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찾아와 각양각색의 상상을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한다. 그때까지 해무도 등대도 격렬이와 등대관리원들도
격렬비열도에서 모두 안녕하기를.
귀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