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칼럼 MARINE COLUMN 안녕과 만선의 기원이 담긴 풍어제
부산은 산과 바다, 그리고 강을 품고 있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삼포지향(三抱之鄕)의 고장이다.
여기에 리아스식 해안선까지 발달해 있어 곳곳에 포구가 자리한다. 550리 자연해안을 따라 바다를 생업터전으로 살아온 우리네 어민들의 모습이 부산의 명소 팔경 속에 그대로 담겨있음을 알 수 있다. 먼저 해운팔경 중 오륙귀범(五六歸帆)은 오륙도 저 멀리서 고기잡이를 마치고 만선의 돛단배가 해운대 미포항으로 돌아오는 전경이고, 사상팔경 가운데 원포귀범(遠浦歸帆)은 이른 새벽 감전나루터를 떠난 고깃배가 역시 만선의 흰 돛을 달고 포구로 돌아오는 풍경이다. 어디 그뿐인가? 수영팔경에는 진두어화(津頭漁火)란 말도 있다. 수영나루터 인근 앞바다에서 고기잡이배에서 흘러나오는 어른거리는 불빛을 말한다. 이처럼 부산은 어민들의 삶이 자연과 함께 숨을 쉬고 풍요로움을 더한다.
부산은 예부터 대구와 청어가 많이 잡히는 고장으로 유명했다. 대구는 가덕도와 거제도 인근이 주어장이었고, 청어는 부산내항이 그들의 놀이터였다. 여기에 남항과 태종대 앞바다에서는 오징어와 갈치가 득실거리고 멸치는 다대포와 수영강 하구 쪽엔 더욱 많이 몰려들었다. 이러한 어종의 생태계 먹이사슬로 인해 상어와 고래까지도 부산 앞바다에 자주 얼굴을 내밀곤 했다. 특히 수영강 하구의 멸치 떼를 따라 갈매기가 줄지어 날아들고 어부들의 멸치 후리는 소리가 수영만을 가득 메우기도 했으니 말이다. 이처럼 부산 앞바다는 황금어장이었기에 순풍을 따라 고기를 잡으러 나갔던 어부들이 만선에 돛을 달고 귀항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보배롭고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그러나 삶의 존속을 위해 변화무쌍한 바다에서 배를 부리고 어로작업을 하다 보면 어디 사고인들 나지 않으랴!
그러다 보면 바다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기 마련이고, 풍어를 희구하는 것 못지않게 무사안전에도 관심을 갖게 된다.
풍어제는 이러한 바다를 생업의 터전을 둔 사람들의 간절한 소망이 담긴 제의(祭儀)다.
부산지방의 풍어제는 동해안별신굿이 모체다. 동해안을 따라 형성된 어촌에서는 자신들의 수호신을 모시고 마을의 안녕과 평화, 그리고 풍어를 기원하기 위해 마을제를 지내왔다. 아직도 수산업을 생업으로 하고 있는 부산의 기장, 다대포, 가덕도, 청사포, 영도 등지에서는 지역주민의 화합과 전통문화의 계승 차원에서 풍어제가 맥을 잇고 있다. 그 가운데 청사포 풍어제는 애절한 전설과 함께 시작된다.
청사포 마을 한가운데는 수령이 400년이 넘는 망부송(望夫松) 한 그루가 마을의 수호신처럼 서 있다. 아득한 날 이곳 청사포에는 금실이 좋은 부부가 살았는데 어느 날 바다로 나간 남편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도 아내는 혹시나 하고 날이면 날마다 바닷가 바위 위에 앉아 애타게 남편을 기다렸다.
이미 저승으로 간 남편은 용궁에서 아내가 하염없이 남편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러한 사연을 전해 들은 용왕은 부인을 용궁으로 데려오게 했다는 것이다. 뒤에 아내가 숨진 자리에서 한그루 소나무가 돋아났고, 마을주민들은 그 곁에 제당을 지어 부인의 명복을 빌게 된 것이 오늘날 풍어제의 기원이 되었다.
풍어제에서 가장 중요하게 모시는 신이 용왕인 것을 볼 때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또한, 기장 죽성리 두호마을 뒷산 언덕배기에는 아름드리 해송 한 그루가 서 있는데 자세히 보면 여섯 그루의 나무가 마치 한그루의 큰 나무가 되어 제당을 둘러싸고 있다. 국수당이란 이름에서 풍기듯 뭔가 범상치 않은 당산나무와 같은 기운이 감돈다. 지난 1996년 정월대보름부터 두호마을주민들은 마을 주신과 같은 이곳에서 별신굿 풍어제를 지내고 있다. 마지막으로 영도 하리항의 만선풍어제다. 대개 풍어제는 정초에 지내지만, 이곳은 삼월 삼짇날 무렵이다. 1960년대 중반 동삼동어촌계 소속의 해녀와 어부들에 의해 시작이 되어 매년 하리항에서 대동의례로 열린다. 규모와 열기로 보면 장엄한 바다 문화행사로 승화된 풍어제의 하나임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