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해양인 I'M A MARINE MAN 무악을 사랑하는 천상명도 이도령 이원석. 무속인이라고 하면 조금 다른 눈으로 보는 경우도 많은데 저는 제가 즐기고 잘하는 일로 밥벌이를 하는, 운이 좋은 사람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국립해양박물관이 위치하고 있는 부산 영도는 어부와 해녀들이 주로 살고 있는 어촌마을이 많은데 그 중 하리항에서는 50년이 넘게 매년 삼월 삼짇날 마다 성대한 만선풍어제를 지내오고 있다. 해양 민간신앙을 주제로 다루며 하리항 풍어제가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내가 하리 거주자이며 지난해 신명 나는 꽹과리 소리를 듣고 밥을 하다 말고 뛰쳐나가 넋 놓고 굿판을 구경하며 짤깍짤깍 박수도 친 경험 때문이다.
굿판을 직접 본 것도 처음이고 무속인을 그렇게 가까이서 본 것도 처음이어서 작두를 올라타고, 칼을 삼키는 시늉을 하고 하는 모습들이 신나기도, 처연하기도 하여 마음에 깊게 남았더랬다. 그래서 이번에 만나볼 해양인은 지난해 하리항 만선풍어제를 담당했던 <한국민속문화삼족오연합회>의 소속 무속인 이원석씨, 그리고 인터뷰 중간중간 역사적 사실에 대한 첨언을 해준 연합회의 최태완 이사장이다.

Q

만나서 반가워요. 본인 소개부터 부탁드릴게요.

A 저는 이원석이라고 하고요, 부를 때는 이도령이라고 부릅니다. 정식 명칭은 천상명도 이도령이고요.
칠년 째 굿판을 쫓아다니며 배우고 있고 주로 태평소 호적을 부는 악사 역할을 담당하고 있어요.
부산에서 따로 법당을 차리고 점을 봐주기도 하고 치성을 드리기도 합니다.

Q

제가 무속 쪽으로는 지식이나 경험이 많이 부족해서 제대로 된 질문인지 잘 모르겠네요.
혹시 어떻게 무속인이 되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A 어쩌다가 이렇게 됐다라는 대답밖에 할 수가 없네요.
어쩌다 보니 22살에 내림굿을 받고 입무(立巫)해서 7년째 무속인으로 살고 있어요. 하지만 제가 정말 매력을 느끼고 빠져든 분야는 시나위에요. 신의 음악이라고도 하죠. 정해진 악보 없이 느린 가락으로 시작해서 차츰 빨라지며 신명을 더해가는 것도 좋고, 불협화음 같은 소리들이 종국엔 조화를 이루는 것도 매력적이에요. 서양음악에 재즈가 있다면 우리나라엔 시나위가 재즈 격인데 예술성을 인정받기가 쉽지 않죠. 무속인이라고 하면 조금 다른 눈으로 보는 경우도 많은데 저는 그냥 제가 즐기고 잘 하는 일로 밥벌이를 하는, 운이 좋은 사람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Q

그럼 굿에 대해 좀 더 심도 있는 질문을 할게요. 어촌의 굿과 육지의 굿에는 차이가 있다고 알고 있어요.
어떤 차이 인건지 그리고 어촌 지역에서 하는 굿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알려주세요.
(이번 질문에 대한 답은 최태완 이사장이 답했다.)

A 육지굿이랑 바다굿은 아주 많이 달라요. 일단 크게 보면은 육지는 강신무가 많고 바다굿은 세습무가 많죠.
설명이 많이 필요하지만, 그냥 알기 쉽게 말하자면 강신무는 무당의 몸에 신이 내려서 하는 것이고 세습무는 사제 관계를 통해 스승에게 배워서 대대로 내려오는 거에요. 아무래도 바다 쪽은 워낙에 자연환경이 거치니까, 하늘에 기대어야만 하는 일들이 많다 보니 무속신앙도 빨리 발전했을 것이고 그래서 더 체계화되었다 보는 의견이 많죠. 시대가 변하다 보니 굿도 많이 변할 수밖에 없어요. 예전에는 마을에서 공동으로 그 마을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복과 안전을 기원하는 제사이자 축제였는데 이제 굿을 하는 마을도 많이 줄었을뿐더러 제의라기보다는 문화행사나 이벤트에 더 가까워진 경향이 많아요. 보통 별신굿 12장을 하면 적어도 3일 이상은 해야 하는데 요즘은 그냥 하루에 빨리 끝내려고 해요.
흥겹고 볼거리가 많은 장 위주로 구성하기도 해야 하고요.

육지의 굿, 어촌의 굿

Q

이도령님은 7년을 굿판을 따라다니셨다 했어요. 힘든 일도 있고 기억에 남은 일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A 별신굿 열두거리를 하면 각 거리를 담당하는 무당이 굿을 진행하지만 저는 악사이기 때문에 모든 거리에 다 참여를 해야 해요. 더군다나 호적을 불다 보니 몇 시간 지나면 정말 하늘이 노래지기도 하고요. 여름에 땡볕에서 몇 시간 동안 태평소를 불고 있으면 강신하기도 전에 제가 먼저 황천으로 갈 것 같죠. 그래도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견딜만해요. 지화(紙花)와 흑애등으로 장식한 무대를 보는 것도 좋아요. 그냥 뭐 운명이죠.

Q

제가 이도령님을 해양인으로 모신 것이기 때문에 바다랑 관련된 이야기를 조금 더 해주세요.

A 저도 고향이 영도에요. 여기 무속인연합회 이사장님도 영도분이시고요. 영도에 무속인이 정말 많아요.
영도다리 밑엔 점바치(점쟁이) 골목도 있었죠. 한국전쟁 때 피난민이 몰려들면서 헤어진 가족을 찾을 방법이 없어 점에 많이 의지했다고 해요. 실제로 가족을 찾아 주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전쟁통에 겪은 두려움이나 슬픔, 걱정, 답답함을 풀어주는 역할을 했겠죠.
현대 과학이 발달한 지금에도 우리 무속인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은 그런 역할 때문이 아닐까요.

걷기를 즐겨하는 나는 영도해변을 따라 걷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암석에 녹아 붙은 촛농 자국 뿐 아니라 용왕 맞이 굿을 하고 있는 광경들을 종종 마주치곤 한다. 어떤 소원이 있어, 혹은 어떤 걱정이 있어 저리 정성스레 용왕님을 찾을까 궁금하면서도 저런다고 뭐가 바뀔까 싶은 회의적인 생각도 했다. 하지만 과학이나 효용, 그리고 종교적인 관점을 떠나 사람들의 걱정과 한, 그리고 소원을 떠안고 대신하여 간절히 빌어주고 풀어주는 그들의 역할은 불안하고 외롭기까지 한 현대인들에게 위로가 되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번 인터뷰를 통해 내가 모르던 세상의 속살을 한 꺼풀 더 벗겨본 것은 분명하다.

반영난 / 국립해양박물관 대외협력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