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바다? 아이고 이제 엉성스럽다.' 나도 해양인 I'M A MARINE MAN 김상국 영도 해녀
'넌덜머리가 난다', '지긋지긋하다'라는 의미의 경상도 방언으로 겉모습을 표현하는 것이 아닌 감정을 전달할 때 쓰임
그 날은 하늘이 맑았음에도 불구하고 유난히 파도가 거세었다. 마치 태풍이라도 부는 듯 파도가 육지를 위협했고 하얀 포말이 부산스럽게 날아 다녔다.
쉴 새 없이 때리고 넘실거리는 파도의 코앞에 그녀가 등을 구부리고 앉아 있었다. 부산의 해녀를 취재하겠다며 인터넷을 뒤지고 인터뷰 컨셉을 잡느라 부산을 떤 나의 노력이 허무해지는 순간이었다. 소란스런 파도 앞에 혼연스레 앉아 있는 그녀의 등이 모든 것을 말해주었다. 영도의 해녀 김상국씨 (60대/영도), 이번 호 “나도 해양인”의 주인공이다.
애환 많은 부산 사람들도 ‘영도’라 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각박한 환경 속에서 억척스러움 하나로 삶을 이어온 사람들의 터전이 바로 ‘영도’이기 때문이다.
40여년 전 제주도에서 남편을 따라 영도로 왔다는 김상국 해녀. 영도 해녀촌에 얼기설기 늘어선 천막을 지키고 앉은 할머니들의 대화를 들어보니, 제주 방언 사이에 경상도의 억양이 군데군데 스며 나왔다. 부산에서 아저씨 일자리도 얻고 자식 교육도 수월히 시킬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며
배에 올랐다 했다. 하지만 영도에서도 삶은 계속 팍팍했고 그녀는 계속 물질을 해야 했다. 아들 하나 딸 하나 키워내 시집장가 보내고 손주들 까지 주렁주렁 보았다는 그녀는 아직도 물때가 되면 물옷을 입고 바다 속으로 들어간다.
시종일관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을 툭툭 던지면서도 “물 튄다, 안으로 들어오너라.”, “사람이 그리 마르면 못쓴다.”하며 걱정을 끼워 넣는 모습에 거친 정이 느껴진다. 내 옷에 물이 튈까 걱정하는 그녀의 옷은 이미 반 이상 젖어 있었고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어 기온도 점점 떨어져가고 있었는데 그건 별로 대수롭지 않은 모양이었다.
거친 파도에 도통 손님이 올 기미가 보이지 않자 슬슬 자리를 정리하는 그녀의 등에 대고 “나도 해양인”의 필수 질문을 던졌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여쭐게요. 바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나는 왜 이 질문을 하며 부끄러웠을까.)”
그녀는 살다 살다 별소리를 다 듣는구나 하는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더니 대답한다.
“바다? 아이고 이제 엉성스럽다.”
나 들으란 듯, 바다 들으란 듯 그렇게 마지막 대답을 던지고 자리를 정리해 먼저 떠나는 그녀 뒤에 남아, 나는 한참을 “엉성스럽다”라는 말을 곱씹었다. 지긋지긋하다면서도 내일이면 또 바다의 품속에 안길 그녀의 평생이 담긴 한마디를 마음에 담고 해녀촌을 나오는 길, 어느덧 물이 차서 바지가 흠뻑 젖어 버리자 나도 한 번 그녀를 따라 내뱉어 보았다. “아이고 이놈의 바다, 엉성스러워라.”
그러고 나니 나를 적신 바다가 더 살갑게 다가왔고, 왠지 조금 더 바다와 가까운 사람이 된 듯 한 느낌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