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해양인 I'M MARINE MAN 데프(DEAF) 2호 선장 손현중. 바다를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풍덩 빠지며 온몸으로 바다를 느끼는, 바다의 아이가 된 사람들. 그런 사람 중 하나인 손선장에게 바다는 도전이자 희망이다.

상상을 해보자.
어두운 밤, 당신은 혼자 폭풍이 몰아치는 망망대해에서 작은 배 한 척에 몸을 싣고 있다.
높은 파도가 사납게 배를 할퀴고, 바깥은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으며 선실에는 물이 들이친다.
배에서는 위험을 알리는 온갖 경고등이 깜빡거리고 알람이 울려댄다.
이 길이 황천길로 이어져 있는 것 같은, 일명 죽음의 항해라 불리는 황천황해이다.
이건 실제 요트 세계일주에 도전하는 모험가들이 한번씩은(사실은 숱하게) 겪는 순간이다.
여기에 몇 가지 제약이 더 있다. 바로 무기항, 무원조. 어떠한 상황이 와도 도움을 받을 수 없으며, 부품이 고장 나도 항구에 들릴 수도 없다.
외로움도 큰 문제이다. 심지어 애완동물도 동승할 수 없다. 강한 정신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정도만 해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것이다. 미치지 않고서야 왜 이런 고생을 할까 하며.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제약이 더 있다면?
예를 들면 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요트가 보내는 위험의 경고음을 들을 수 없다는 뜻이다. 엔진에 이상이 생겨도 바로 알아차릴 수 없고,
유빙을 포착한 레이더가 알람을 울려도 듣지 못하는 위험으로, 도전의 실패는 물론 생명과도 연계된 극한 상황에 맨몸으로 노출되는 것이다.
어쩌면 자기학대와도 같아 보이는, 그러나 모두가 감동 할 무모한 모험에 도전하기 위해 차곡차곡 단계를 밟아가는 한 청년을 알고 있다.
‘나도 해양인’으로 초청하리라 점찍어둔 인물 중 특히나 애정하여, 가능하면 좀 더 아껴두고 싶었던 나의 친구를 소개한다.
한국해양대학교에서 박사과정 중인 손현중 데프(Deaf)2호 선장이다. 서면으로 그와 나눈 이야기를 여기 풀어놓는다.

데프2호 선장 손현중이 요트에 타고있는 사진

Q

본인 소개를 해달라.
A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어릴 때 고열로 청력을 잃었다. 어려서부터 대항해시대를 모티브로 한 게임과 함선모형 제작이 취미였고, 엔진이나 기계에도 관심이 많아 기관사를 꿈꿨었다. 하지만 내가 가진 장애 때문에 기관사의 꿈을 접어야 했고 전자공학을 공부하며 수중탐사로봇에 관심이 생겨 한국해양대학교에서 진학하여 지금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Q

그렇다면 기관사 대신 요트 선장을 택하게 된 것인가.
A 그렇다. 해양대학교로 진학하며 매일같이 바다를 접하다 보니 어릴 적의 꿈이 생각났다. 나만의 배로 넓은 바다를 누벼보고 싶은 열망이 생겼고, 일단 마음을 먹으면 반드시 하고야 마는 성격이라 생활비를 아껴서 중고 모터보트를 덜컥 사버렸다. 그렇게 저질러버리기는 했는데 학생신분으로 모터보트의 연료를 공급하고 유지하는 등의 비용은 큰 부담이었다. 그러다 눈에 띈 것이 요트였다. 바람을 주동력으로 하니 연료비에 대한 부담도 덜 수 있고 어지간해서는 가라앉지 않는다는 불침선이라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마음을 먹고 나니 하루 빨리 요트 선장이 되고 싶어 안달이 났다. 요트 세계 일주에 성공한 윤태근 선장과 군산의 내로라하는 요트 고수 박재일 선장을 무턱대고 찾아가 자원봉사를 자처하며 요트에 대해 배웠다.

Q

정말 추진력이 대단하다. 요트 항해에 어려움은 없나.
A 요트 항해는 팀워크가 중요하다. 계속 서로 소통하며 운행해야 하는 요트의 특성상 나는 좋은 크루는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요트에 대한 열정은 사그라들지 않았고 팀워크를 못 맞추는 크루가 되기보다 단독항해를 잘하는 선장이 되고자 다짐했다. 그렇게 요트면허를 따고 낡은 29피트 중고요트를 구매하게 되었다. 하지만 내 요트가 생겨도 항해는 순탄치 않았다. 부산 수영만 요트계류장에 자리가 나지 않아 불안정한 계류 자리를 옮겨 다니며 스트레스와 악몽에 시달렸다. 낡은 요트는 안팎으로 물이 새어 틈나느대로 물을 퍼내야 했고 오토파일럿(자동조타기)이 없어서 항해 중 잠시도 쉴 수 없었다. 항해장비도 턱없이 부족해 심지어 기본적인 속도 확인도 어려웠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학교와 거리가 멀지만 안정적인 통영으로 요트를 옮기고 주말마다 통영을 오가면서 요트정비에 매진했다. 부족했던 오토파일럿과 GPS 장비를 연구해서 직접 만들어 장착도 하고 엔진수리 등을 하면서 조금씩 경험을 쌓아왔다.
데프2호 선장 손현중의 요트 사진

Q

최근에 요트를 업그레이드 해서 구입했다. 이유가 있나.
A 2016년 7월 무기항 무원조로 세계 일주에 성공한 김승진 선장님의 아라파니호의 마지막 항해를 국립해양박물관의 초청으로 동행하게 되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세계를 일주한 요트를 타고 김승진 선장님과 대화를 했던 것이 강렬하게 뇌리에 새겨졌다. 전설 속 무용담처럼 아득하기만 느껴졌던 세계 일주에 나도 한 번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간절한 꿈이 생기자 용기는 저절로 생겨났다. 세계 일주에 도전하기 위해선 대양항해 경험도 많이 쌓아야 하는데 가지고 있던 낡고 작은 요트로는 불가능했다. 공들여 어렵게 가꾼 요트와 장비를 급매하고 부모님을 설득하여 자금 지원을 받은 것을 합쳐 간신히 구입한 요트는 아라파니호와 같은 회사에서 건조되었으며 아라파니호 보다는 좀 더 작고 연식이 많지만 충분히 연습한다면 든든한 세계일주의 동반자가 되어 주리라 본다.

Q

아라파니호의 마지막 항해를 기획했던 사람으로서 굉장히 뿌듯해진다.
손선장에게 있어서 도전이란 무엇인가, 목표한 도전과제가 궁금하다.
A 나에게는 두 명의 롤모델이 있는데, 김승진 선장과 게리휴즈(Gerry Hughes)이다. 김승진 선장님에 대해서는 이미 얘기를 했고, 게리 휴즈는 스코틀랜드의 청각장애인으로 2012년 9월 1일 스코틀랜드 트룬(Troon)을 출발해 8개월간 항해 끝에 청각장애인으로 세계 최초로 단독 세계일주에 성공한 사람이다. 그는 세계일주 도중 남대서양에서 자동조타장치와 전자장비 결함으로 아쉽게도 희망봉에서 단독 무기항 무원조 세계일주 기록을 포기해야 했다. 나는 휴즈가 달성하지 못한 단독 무기항 무원조 세계일주에 도전해 성공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걸었다. ‘인생의 목표’씩이나 될 정도인가 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것이 얼마나 처절하게 어려운 도전인지를 간접적으로나마 알고 있기 때문에 생의 과제로 삼고 한걸음씩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언제 도전을 할지는 아직까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목표를 위해 바다달팽이처럼 꾸준히 준비하려고 한다. 단독항해인 만큼 피로도와 위험부담을 덜기 위해 수중로봇을 전공을 최대한 살려 요트의 돛을 자동으로 조종하는 장치를 연구하고 개발해 안정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테스트 할 것이다. 또한 오토파일럿(자동조타기), GPS, 풍향풍속계 등과 같이 항해에 중요한 항해장비를 직접 개발해서 어떠한 고장상황이 발생하더라도 빠르게 복구할 수 있도록 준비하려고 한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이번 도전의 가장 큰 난제가 있으니, 바로 가족들이다. 믿고 지지해주신 부모님께 죄송하고 감사하지만 벌써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 세계 일주를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은 아직까지는 비밀로 하고 있다. 청각장애인 아들을 키우면서 고생하신 엄마가 더 이상 걱정하시지 않도록 아들이 잘 해낼 수 있음을 조금씩 꾸준하게 보여드릴 것이다.

바다에 중독된 사람들을 여럿 보았다. 바다를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풍덩 빠지며 온몸으로 바다를 느끼는, 바다의 아이가 된 사람들. 그런 사람 중 하나인 손선장에게 바다는 도전이자 희망이다. 그의 도전을 응원하는 한 사람으로써 부디 바다가 그에게 한없이 너그럽기를, 견딜 수 있는 만큼의 고난만 베풀어 언젠가 요트세계일주에 성공한 그의 사진을 신문에서 접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반영난 / 국립해양박물관 대외협력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