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칼럼 MARINE COLUMN 우리나라의 보물선과 수중고고학 우리나라 바다에서 건져 올린 가장 대표적인 보물선은 바로 신안선이다. 신안선은 1975년 신안군 증도 방축리 앞바다에서 어부의 그물에 청자꽃병이 올라오면서 존재가 알려졌고 이듬해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됐다.
바다 그리고 보물이라는 단어는 황금을 가득 싣고 침몰한 보물선을 떠올리게 한다. 어떤 이들은 어릴 적 보물선을 찾아 떠나는 모험을 상상해보기도 했을 것이다. 영화에서 나올 법 한 이런 모험을 실제 직업으로 삼은 이들이 있다.
바로 수중고고학자이다. 수중고고학자는 바다 아래 묻힌 보물, 대표적으로 난파선을 찾아 발굴하고 보호한다.
수중발굴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육상 문화재 발굴조사와 동일한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다만 바다 속이라는 환경 때문에 수중고고학자들은 잠수복과 호흡기를 착용하고 조금씩 해저면의 개흙을 벗겨 내면서 난파선을 조사한다.
이렇게 우리나라 바다에서 찾아낸 배는 모두 14척으로 통일신라시대 선박 1척, 고려시대 선박 10척, 조선시대 선박 1척, 외국선박 2척이다.
신안선 인양모습
우리나라 바다에서 건져 올린 가장 대표적인 보물선은 바로 신안선이다. 신안선은 1975년 신안군 증도 방축리 앞바다에서 어부의 그물에 청자꽃병이 올라오면서 존재가 알려졌고 이듬해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됐다. 당시에는 수중고고학자라고 할 만한 이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에 수중조사는 해군 해난구조대(SSU)가 진행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수중고고학이 시작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었기에 신안선 수중발굴이 가지는 의미는 크다.
1984년까지 11차례에 걸쳐서 이루어진 발굴조사에서 23,503점의 유물과 23ton의 동전, 고급 목재인 자단목 1,017점이 출수했고, 신안선을 인양했다. 유물의 대부분은 도자기로 20,660여점에 이른다. 저장 성(浙江省) 룽취안요(龍泉窯)의 청자, 장시 성(江西省) 징더전요(景德鎭窯)의 청백자와 백자, 지저우요(吉州窯)의 백지흑화(白地黑花)자기 등이 대표적이다. 이 외에도 금속, 석제, 유리제품 등이 발견되었고 후추, 계피, 정향(丁香)과 같은 향신료와 여지라는 과일의 씨 등 한약재도 발견됐다.
어부의 그물에 올라온 신안선 청자꽃병
신안선 유물 출수모습
신안선은 해양실크로드를 항해하던 선박으로 1323년 원(元)나라 저장 성 닝보(寧波)항을 출발하여 일본 하카타(博多)항으로 향하던 중 우리나라 신안 앞바다에서 침몰했다. 이것은 신안선에서 발견된 청동추와 목간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청동추에서는 원나라 시기 닝보항을 가리키는 ‘칭위안루(慶元路)’라는 명문이 확인되었고, ‘지치삼년(至治三年)’이 적힌 목간은 1323년 신안선이 마지막 항해를 떠났음을 말해주었다. 그리고 하카다의 ‘조자쿠암(釣寂庵)’, ‘하코자키궁(筥崎宮)’, 교토(京都)의 ‘도호쿠사(東福寺)’가 적힌 목간을 통해 신안선의 목적지를 알 수 있었다.
태안선 고려청자 수중사진
태안선 주꾸미가 가지고 올라온 고려청자
보물 제1782호 청자 퇴화무늬 두꺼비모양 벼루
보물선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난파선으로는 2007년 발견된 태안선이 있다. 태안선은 어부의 통발에 걸려 올라온 주꾸미가 고려청자를 가지고 올라오면서 존재가 알려졌다. 주꾸미가 건져 올린 고려청자는 바로 기사화 되었고 이를 접한 수중고고학자(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수중발굴과)들은 곧바로 태안 해역에 대한 탐사를 진행하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층층이 쌓인 고려청자 더미를 발견했다. 이어진 발굴조사에서 25,000여점의 고려청자와 태안선 을 인양했다.
청자들은 5층으로 쌓여있었고, 접시와 대접, 완 등이 많이 실려 있었다. 이 외에도 두꺼비모양 벼루, 사자모양 향로, 참외모양 주자도 발견되었다. 이 중 두꺼비모양 벼루는 보물 제1782호로 지정됐다. 이 고려청자들은 약 900년 전 1131년 전남 강진에서 만들어진 것들로 당시의 수도인 개경으로 향하던 중 태안 앞바다에 침몰한 것이다.
이 또한 청자와 같이 발견된 목간을 통해서 알 수 있었는데, 목간에는 신해(辛亥)라는 간지가 적혀있어 침몰시기를 추정해볼 수 있었고, 탐진현(耽津縣, 지금의 강진)에서 개경으로 보낸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태안선 고려청자 수중사진
우리나라 수중고고학에서 가장 중요한 유적이라고 한다면 단연 마도해역을 들 수 있다. 마도해역은 태안선이 발견된 지점에서 북서쪽으로 4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마도해역이 처음 발견된 것은 태안선 발굴이 한창이던 2007년 유물을 발견한 어민의 신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몇 차례 탐사가 있었고 2009년 본격적인 조사에서 마도1, 2, 3호선이라는 3척의 고려시대 선박을 발견했다. 이 후 연차적으로 발굴조사가 이루어졌고, 2014년 조선시대 선박인 마도4호선이 발견되어 2015년에 발굴조사가 진행됐다. 이렇게 많은 수의 선박이 태안 마도 앞바다에서 발견되는 것은 이곳이 과거 난행량(難行梁)으로 불릴 정도로 항해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항해가 어렵다는 뜻의 ‘난행’이란 이름을 싫어한 사람들은 이곳을 안흥량(安興梁)으로 고쳐 불렀을 정도이다.
이곳에서 발견된 4척의 선박들도 목간을 통해서 항해시기, 출발지와 목적지를 알 수 있었다. 마도1호선은 1208년 전라도 나주와 장흥, 해남 등지에서 실은 곡물과 청자 등을 싣고 개경을 향하던 선박이었으며, 마도2호선은 1213년 이전 전라도 고창, 정읍에서 실은 곡물과 화물을 개경으로 옮기던 선박이었다. 특히 마도2호선에는 청자매병 2점이 목간과 함께 발견됐는데, 이 목간을 통해 매병을 고려시대 사람들은 준(樽)이라 불렀고, 꿀과 참기름을 담는 용기로 사용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 매병 2점은 각각 보물 제1783호와 보물 제1784호로 지정되었다. 마도3호선은 1265년~1268년 사이 전라도 여수에서 곡물과 전복, 홍합 등을 싣고 당시 수도였던 강화도로 향하던 선박이었다. 마지막으로 마도4호선은 조선시대 조운선으로 전라도 나주에서 광흥창(지금의 마포)으로 향하던 선박이었다.
우리나라 수중고고학은 이렇게 다양하고 진귀한 유물을 가득 싣고 항해도중 침몰한 난파선을 찾아내면서 성장했다. 지금도 우리나라 바다에는 많은 보물선들이 잠들어있고 수중고고학자들은 이를 찾고 보호하기 위해 매일 바다 아래를 돌아다니고 있다. 아직 수중고고학 분야가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수중고고학자들의 이런 노력을 통해, 보물선을 찾아 모험을 떠나는 어릴 적 꿈을 간직한 이들이 수중고고학의 매력에 빠질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