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전시이야기 marine exhibition story 대항해시대 애선단을 이끈 비범한 항해가, 정화

명나라 3번째 황제인 영락제는 바다로 나가기로 결정하였다. 이것은 중국 최초의 시도였다. 영락제가 바다로 진출한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첫째 통치기반 안정과 태평성대의 구현이라는 정치적 이유, 둘째 막대한 부를 얻기 위한 경제적 동기, 셋째 조공체제 를 바탕으로 한 외교적 이유이다.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1405년부터 이어진 명의 대원정은 영락제, 더 나아가 국가의 바람을 안고 시작되 었다. 이 기나긴 대원정은 정화라는 인물이 영락제의 명을 받아 그 포문을 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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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 바람을 담은 대원정의 시작
중국의 대항해는 정화를 빼놓고서는 논할 수 없다. 총 7차례의 긴 항해를 지휘했던 정화는 본래 환관이었다. 그는 뛰 어난 인품과 능력으로 일찍이 영락제의 신임을 받았다. 그리하여 항해의 총책임자로 대원정을 시작하게 된다.
정화 선단은 명나라 영락 3년(1405년)부터 선덕 8년(1433)까지 28년 동안 총 7차례에 걸쳐 동남아시아, 인도양, 동 아프리카까지 약 30여개 국가와 지역을 항해하였다. 이것은 중국 역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정화 선단의 주축 함대는 보선이었다. 보선은 보물을 실은 배라는 뜻이다. 이 배는 황제가 다른 나라에 하사하거나 또 는 다른 나라에서 황제에게 바치는 귀한 물품을 운송하는 배였다. 대형 보선은 길이가 약 138m, 넓이가 61m이며, 적재량은 약 1500톤에서 2500톤에 달했다. 이밖에도 기능에 따라 식량을 실은 ‘양선’, 말을 실은 ‘마선’, 신선한 물을 저장하는 ‘수선’, 전투를 지휘하는 ‘좌선’, 기동력이 뛰어난 작은 배로서 전투를 위한 ‘전선’이 있다. 정화 함대는 보선 60척 을 포함한 200여척이 함께 움직인 대선단이었다.
  • 정화 동상 사진
    정화 동상
  • 정화 선단 사진
    정화 선단
이번 기획전시 “대항해시대-바람에 실은 바람”에서 정화 함대를 다양한 크기와 종류의 배 모형으로 연출해 놓았다. 이를 통해 당시의 정화 선단의 위용을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정화의 항해는 여러 나라들과의 교역 활성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정화가 방문한 도시들은 명이 가지고 있던 도 자기, 비단, 사향 등에 관심이 많았다. 기록에 의하면 정화가 한번 원정을 떠날 때 가지고 간 청화백자가 약 44만 점이 었다고 한다. 매번 같은 양을 가지고 나갔다고 가정한다면 1405년부터 1433년까지 약 30년 간 총 3백만 점의 청화 백자가 인도양을 통해 수출된 셈이다. 정화 선단은 청화백자를 비롯한 그들의 물품을 전달해주면서 그들이 원하는 후추, 진주, 상아 등을 가져오기도 하였다. 천원호 사진

천원호

  • 양선 사진
    양선
  • 수선 사진
    수선

세계의 곳곳을 다니며 명의 위엄을 떨쳤던 정화의 대원정은 1424년 영락제가 사망하자 막을 내리기 시작했다. 영락제의 죽음 후 잇따른 중국의 해금정책과 마지막 원정 때 정화의 죽음으로 중국의 대원정은 완전히 막을 내리게 되었다. 중국이 바다로 나가지 않은 것은 그들이 더 이상 필요성을 못 느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만일 중국이 대원정을 멈추지 않고 바다로 계속 나아갔다면 세계의 역사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송미현 국립해양박물관 전시기획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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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단을 이끈 비범한 항해가, 정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