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칼럼 MARINE COLUM 섬에 봄이 온들. 지금쯤 간출여에는 봄기운을 받은 톳이 새싹을 틔울 것이고, 미역은 막 자라기 시작할 것이다. 우럭이며 광어, 농어와 참돔도 봄이면 설쳐댄다. 상괭이는 어민들의 배를 따라다니며 노닐 것이다. 그런데 그 섬에 지금 주민은 없다고 한다.

남영희, 남인희, 남 막둥이, 그리고 그들의 아버지인 할아버지, 손녀 선화, 경님이, 손자 훈걸이, 형수님, 오리 덕순이. 이들과 나는 그해 봄부터 겨울까지 그 섬에 살았다.
봄이 오는 1989년 3월. 전북 부안 곰소항에서 여객선 서해훼리호를 타고 칠산 바다를 건너 섬 앞에서 마중 나온 종선으로 갈아탔다. 사리 때는 물이 많이 빠져 큰 배를 댈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섬은 하왕등도다.

봄아 오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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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에 위치한 하왕등도 위치. 상왕등도 및쪽에 위치해있다.

기억으로는 당시 섬에 모두 다섯 가구가 살았다. 밭이라곤 코딱지만 한 채소밭뿐이었다.
그마저 야생화된 염소가 설쳐대 형수님 표현대로 “삼춘, 여건 밭에서 나는 먹잘 것이 별로 없소” 였다.
다섯 가구의 이장 집이던 남인희 씨의 부인 즉, ‘형수님’ 은 그날 자신들의 유일한 수입원 3톤급 ‘보성호’ 통발에서 붕장어를 잡으면 저녁 찬으로 붕자어 두어 마리를 듬성듬성 썰어 소금 간으로 맑은국을 끓여냈고, 우럭과 함께 잡혀 잡어 취급을 받던 쏨뱅이는 고춧가루를 조금 뿌려 간장으로 졸여 냈다. 이런 반찬들이 나올 땐 어느새 밥 한그릇이 뚝딱 비워졌다. 이장 댁에서 밥을 대먹었기에 기억이 생생하다.

경운기 엔진으로 돌리는 발전기가 저녁 8시면 꺼졌다. 그러자 전구 대신 별과 달빛이 어둠을 밝혔다. 입향조의 직계인 남씨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섬의 역사를 알게 되었다. 70년대 인구가 많을 때는 200명이 넘게 0.74㎢의 섬에 살았다고 한다. 마을은 섬의 동쪽과 서쪽에 형성됐다. 그래서 학교는 섬의 꼭대기에 있다. 전교생 2명을 가르치는 분교장 겸 담임 선생님도 한솥밥을 먹었는데 식사 후 15분 정도 걸리는 학교 사택까지 혼자 밤길을 걸어가신다. 선생님이 올라가셨을 즈음 이장님은 전기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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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위 하왕등도 사진

오리 덕순이는 섬으로 발령받고 나서 부안 장에 나가 산, 세 마리의 오리 중 한 마리다. 두 마리는 오다가 여객선에서 탈출하는 바람에 잃어버리고 남은 한 마리가 장성하여 내내 동무가 되어주었다. 섬 생활은 외로웠지만, 그곳에서의 삶은 모두 추억이 되었다.

지금쯤 간출여에는 봄기운을 받은 톳이 새싹을 틔울 것이고, 미역은 막 자라기 시작할 것이다. 우럭이며 광어, 농어와 참돔도 봄이면 설쳐댄다. 상괭이는 어민들의 배를 따라다니며 노닐 것이다. 그런데 그 섬에 지금 주민은 없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형제들은 육지로 흩어졌고, 아이들도 함께 떠났다.

독도가 더욱 소중한 것은 주민이 살기 때문. 왕등도는 ‘아침이면 중국의 닭 우는 소리가 들린다’ 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국토의 서쪽 막내다. 주민이 없는 섬에 봄이 온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외딴섬 주민에 대한 정부의 각종 지원책이 있긴 하다. 더불어 무인도에 정착하려는 귀어인에 대한 지원도 더 많아져 하왕등도에 사람이 다시 살아 진정한 봄이 오면 좋겠다.

이재희/부산일보 라이프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