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전시 이야기 MARINE EXHIBITION STORY 정유재란 승전 7주갑 (420년) 기념 수군조련도병 (水軍操練圖屛)

올해는 12지 간지로 60년 만에 찾아오는 정유년(丁酉年)이다.
420년 전 정유년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정유재란(1597~1598)이 일어난 해이기도 하다.
이에 우리 박물관에서는 정유재란 승전 7주갑(420년)을 기념하여 소장 자료인 수군조련도를 1층 다목적 홀에서 전시 중이다.

다목적 홀에 전시된 수군조련도 사진

다목적 홀(1F) 전시모습

정유재란은 임진왜란(1592~1598)중 2차 침략 전쟁이며, 한자 풀이 그대로 정유년에 다시 일어난 전쟁이란 뜻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과 '노량해전'이 모두 정유재란 중에 일어난 전쟁이다.

임진왜란 중 명나라 군대가 조선을 지원하면서 휴전 회담이 시작되었지만, 1597년 회담이 결렬되면서 다시 전쟁 (정유재란)이 시작되었다. 조선을 재침략한 왜군은 정보전을 통해 조선 조정을 교란시켜 공포의 대상이었던 이순신 장군을 파직시키는데 성공한다. 이후 왜군은 원균이 지휘하는 칠천량(漆川梁, 현 경남 거제) 해전에서 대승을 거두고, 실질적인 남해안의 해상권을 확보하였다.

정유재란 승전 7주갑(420년) 기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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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해상전투 위치도. 임진년엔 당포해전, 한산도대첩, 옥포해전, 부산포해전을 치뤘고, 정유년엔 명량대첩, 노량대첩을 치뤘다.

임진왜란 당시 해상전투 위치도

칠천량 해전에서 원균이 전사한 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된 이순신 장군은 남아 있는 전선을 수습하여 수군을 재건했으며, 1597년 10월 25일(음력 9월 16일) 진도 울돌목에서 13척의 배로 130여척의 왜군에 맞서 대승을 거두었다. 이 전투가 그 유명한 명량해전이다. 이 승리로 조선 수군은 해상권을 다시 장악하였으며, 왜군의 수륙병진(水陸竝進) 작전을 무산시켜 정유재란의 전세를 뒤집을 수 있었다. 한양으로 진공하던 왜군은 보급로가 끊길 것을 우려해 충청도 직산(현 천안시 인근)에서 진격을 멈추었고, 그 뒤 전쟁은 남해안 일대의 왜성(倭城)에서 농성하는 왜군을 조선과 명나라의 연합군이 공격하는 양상으로 바뀌었다.

이 당시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수군은 1598년(선조 31)에도 절이도(折爾島, 현 전남 여수 인근)와 고금도(古今島, 현 완도)에서 왜군에 승리를 거두었다. 또한 그해 9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자 철수를 준비하였다.
12월 16일(음력 11월 19일) 명나라와 연합하여 노량(露梁, 현 경남 남해)에서 500여 척의 왜군과 싸워 200여척의 적선을 불태우는 등 큰 승리를 거두는데, 이 전투가 바로 노량해전이다. 하지만, 이 전투에서 이순신 장군은 도주 하던 적선을 추격하다가 적의 유탄에 맞아 전사하였다. 노량해전의 승리를 마지막으로 7년간 계속되었던 조선과 왜의 전쟁은 끝나게 된다.

이순신 장군과 정유재란 (丁酉再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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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준조련도병

국립해양박물관 소장 수군조련도병(水軍操練圖屛)

우리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수군조련도는 조선 후기 수군의 훈련 모습을 그린 8폭 병풍이다. 삼도수군통제사영은 봄과 가을에 정기적으로 대규모 훈련을 개최하였으며, 이때에는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3도의 수군이 모두 집결하였다. 특히, 봄 훈련인 춘조(春操)에는 군사 3만여 명이 통영에 집결하고, 판옥선과 거북선 등 500여 척의 함선이 동원되었다.

수군조련도를 살펴보면 조선후기 수군의 편제를 확인 할 수 있다. 삼도주사도독사령선(三島舟師都督司令船), 삼도대중군사령선(三島大中軍司令船), 부선(副船), 좌·우탐선(左右探船), 좌·우한선(左右翰船) 및 소속 편대, 그리고 중영(中營)·전영(前營)·좌영(左營)·우영(右營)·후영(後營) 등 오영(五營)에 소속되어 있는 전선들이 그려져 있다.

  • 함대 전선 배치현황 그림
    함대 전선 배치현황 그림 확대본 이미지 확대 이미지 닫기

함대 전선 배치현황

또한 세부적으로 묘사된 각 전선은 저마다 수군 깃발을 앞·뒤로 갖추고, 깃발에는 선단 체제에서의 위치와 소속 지명이 명기되어 있다. 전선의 앞 선두(船頭) 부분은 수군 깃발을 통해 이 전선의 수군 편제 예하 어느 지역 소속의 전선임을 알 수 있고, 선미(船尾) 부분은 흑색 바탕에 구분이 가능한 글자가 함께 표시되어 있다. 특히, 선두 부분 깃발을 적색(前), 황색(中), 흑색(後), 녹색(左), 백색(右)으로 묘사함으로써, 수군 편제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좌영장경상좌수사(左營將慶尙左水使)'라는 깃발 명을 통해 수군 편제의 왼쪽을 책임지고 있는 경상좌수사(관직명) 임을 알 수 있고, '후초관기장(後哨官機長)'이라는 깃발 명을 통해 왼편 중에서 편대의 후방을 감시하는 직책을 가지고 기장에서 온 전선이란 뜻이 된다.

수군조련도 세부 그림

수군조련도 세부

수군조련도를 통해 살펴 본 결과 정유재란 이후 조선은 수군을 체계적으로 훈련 하였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조선후기 지역별로 편대를 구성하고, 도별로 선단을 구성하여 명령이 있을 때는 지정된 해역으로 집결함과 동시에 사전에 임무와 위치를 정하고, 정기적인 훈련을 통해 조선 수군의 능력을 끌어 올렸을 것으로 보인다.

수군조련도병(水軍操練圖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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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doopedia(두산백과)
정해은, 2004, 『한국 전통병서의 이해』,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정해은, 2008, 『한국 전통병서의 이해(Ⅱ)』,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유미나, 2014, 『조선후반기의 統制營 水軍操鍊圖 연구 –국립진주박물관 소장 《통제영 수군조련도》병풍을 중심으로-』, 미술사학연구.

김진태/국립해양박물관 전시기획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