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전시 이야기 MARINE EXHIBITION STORY 원양어업 60주년 기념 테마전 먼 바다, 만선의 꿈 2017.6.29 ~ 9.17 국립해양박물관 1층 다목적 홀

1957년 첫 원양어선인 지남호 출항을 시작으로, 눈부신 성장을 해온 대한민국 원양어업 60년의 역사는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원동력이자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시작은 미약하였지만, 거친 바다를 헤치며 만선의 꿈을 향해 나아간 수많은 선원들의 노력은 원양어업 개척사에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번 전시는 60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우리와 함께한 원양어업의 발전상과 망망대해에서 힘든 시간을 견뎌 낸 우리 선원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원양어업 60주년 기념 테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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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Joy of Going off on the First Fishing

우리나라 원양 어업사에 영원히 기록될 제1호 원양어선인 지남호는 1946년 미국 정부가 시애틀 수산시험장의 연구를 위하여 종합시험선으로 건조한 선박 2척 중 하나였습니다. 이 선박의 선명은 “워싱턴호(SS Washington)”였고, 이 워싱턴호는 약 3년간 조사활동을 마친 뒤 한국 정부가 1949년 인수하였습니다.
그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남쪽으로 뱃머리를 돌려 부를 건져 올려라"라는 의미로 이 선박을 “지남호(指南號)”라 하였습니다. 1951년 제동 산업이 이를 정부로부터 인수하여 1957년 6월 29일 부산항을 출발한 지남호는 8월 15일 인도양에서 사람 키 보다 더 큰 물고기를 잡게 되었습니다.

왼쪽:지남호 첫 출항식, 오른쪽:지남호에서 잡은 새치를 배경으로 기념촬영 중인 이승만 전대통령

지남호 첫 출항식지남호에서 잡은 새치를 배경으로 기념촬영 중인 이승만 전대통령

지남호 첫 출어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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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 of Sailor

1960년대 원양 어선이 증가함에 따라, 승선할 젊은 선원들이 필요했고, 정부 역시 선진국의 앞선 수산 기술 도입과 고용 창출을 위해 우수한 선원 양성 교육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참치연습용 보호망 그물뜨기와 어구조립법 실습, 한국어업기술훈련소 사진

참치연습용 보호망 그물뜨기와 어구조립법 실습한국어업기술훈련소

이와 같은 배경 속에서 정부는 국제연합(UN)과 국제연합개발 계획 특별기금 사업(UNDP/SF) 기본 협정을 체결하게 되고, 1965년 부산 영도구 남항동에 한국어업 기술 훈련소를 건립하게 되었습니다. 1965년부터 1969년까지 5년 동안 총 9기로 운영되어 수료자 413명을 배출(78.1%)시켰으며 연장된 1972년까지 총 992명이 입소해 793명 (어로 423명, 기관 370명)이 수료하였습니다. 1998년 1월에는 선원 재교육, 상선 선원 교육 전문기관이던 한국해 기연수원과 한국어업기술훈련소를 통합한 한국해양수산연수원(KIMFT)이 개원하여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습니다.

선원의 꿈을 키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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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ribution of Overseas Fishing Crew

그들의 희생을 돌아보다 Looking back on Sacrifice of them

우리나라 원양어선 선원들이 1970년대 말까지 벌어들인 외화는 약 20억 달러로 그 당시 우리나라 경제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특히 1971년에는 원양어업 수출액이 우리나라 총 수출액의 5%를 상회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에 비해 오랜 기간 동안 먼 바다에서 혹독한 추위와 매서운 바람, 숨 막히는 더위와 그 이상의 열악한 환경 에서 일하는 선원들의 공로는 크게 조명 받지 못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원양어업 조업 시 목숨을 잃은 선원들을 안치한 해외 선원 묘지는 한동안 무관심 속에 방치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정부와 한국원양산업협회의 노력으로 333기 중 27기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고, 현재 8개국 305기가 지속적인 관리를 받고 있습니다.

국립해양박물관 전시기획팀 권유리
원양 선뭔들의 공로